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숀 피긴스 (문단 편집) === 영광의 에인절스 시절 === [[파일:external/www1.pictures.gi.zimbio.com/New+York+Mets+v+Los+Angeles+Angels+Anaheim+_5do_3pmAeel.jpg]]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7년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 지명을 받아 [[콜로라도 로키스]]에 입단했으나, 2001년 중순 [[애너하임 에인절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에인절스로 이적 후 타격에 눈을 뜬 피긴스는 2002년 AAA에서 프로입단 후 처음으로 3할의 타율을 기록했고, 시즌 후반에 빅리그로 콜업되어 대주자 등으로 15경기를 뛰었다. 이듬해인 2003년에는 71경기를 뛰면서 .296의 타율과 13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서서히 빅리그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2004년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어 .296 5홈런 60타점 34도루의 성적을 기록했다. 부상에 신음하던 [[트로이 글로스]] 대신 주로 3루를 보았지만, 그 외에도 외야수, 2루수, 유격수까지 소화하면서 유틸리티로서의 진가를 발휘했다. 스몰볼로 대표되는 [[마이크 소시아]] 감독의 운영철학의 선봉에 있던 선수가 바로 준수한 컨택능력과 수비력, 그리고 빠른 발을 가진 피긴스였다. 2005년에도 피긴스는 팀의 리드오프로 나서 .290 8홈런 57타점에 리그 1위인 62개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타선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바톨로 콜론]]과 함께 에인절스 공동 MVP로 선정되었다. 특히 그가 기록한 62도루는 1975년 미키 리버스가 기록한 70도루에 이은 에인절스 프랜차이즈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2006년에도 내야와 외야를 오가며 .267 9홈런 52타점 52도루를 기록했다. 2007년에는 시범경기에서 손가락 부상을 당하며 시즌 초 한 달을 날려먹었지만 복귀한 뒤 불방망이를 휘둘렀는데, 6월에만 에인절스 월간 신기록인 53개의 안타를 때려내기도 했다. 시즌 성적은 .330 3홈런 58타점 41도루. 이듬해인 2008년에는 .276 1홈런 22타점 34도루로 다소 주춤했으나, 2009년에는 생애 첫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에 출장하는 등 .298 5홈런 54타점 42도루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101개의 볼넷은 아메리칸리그 1위였다. 그리고 시즌 후 FA자격을 얻게 되었고, [[시애틀 매리너스]]와 4년 3,600만 달러의 계약을 맺게 된다.[* 에인절스가 제시한 금액은 3년 2,400만달러였다고 한다. 사실 당시 에인절스에서는 피긴스의 공백을 어느정도 메워줄 자원이 제법 많았고, 유망주 브랜든 우드의 자리를 만들어줄 필요도 있었기에 피긴스와의 재계약이 그렇게까지 절실하지는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